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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경제] [매경이 만난 사람]`부처님 오신날` 앞두고 만난 해인사 백련암 주지 원택스님
등록일 2018-05-15

인생은 자기와의 대화…남과 비교않는 `소욕지족`의 삶이 행복
남북 불교교류 총책임 맡아…금강산 성지순례 가는 날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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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꿈같고 허깨비 같은 인생 살면서 뭘 비교할 게 있어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난 원택 스님은 결국 행복은 부처님 말씀대로 작은 것에 만족하는 데서 온다(小欲知足)고 강조했다. [이충우 기자]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29세 청년이 해인사 백련암을 찾는다. 친구를 따라 나선 길이었지만 그곳에서 청년의 인생 항로는 바뀌어버린다. `가야산 호랑이`라고 불렸던 성철 스님을 만난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인생의 좌우명에 대해 한말씀해달라는 청년에게 `1만배`를 하고 오라는 가혹한 숙제를 내준다.
 
당연히 1만배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백련암에서 하루를 보낸 청년은 성철 스님의 형형한 눈빛에 끌려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그 청년은 성철 스님의 맥을 이어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큰스님이 됐다. 원택 스님(圓澤·74) 이야기다. 성철 스님의 뒤를 이어 해인사 백련암 주지를 맡고 있는 스님은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라며 물질문명 시대의 중생들을 걱정했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5월 22일)을 앞두고 최근 조계종 남북 교류 전담 기관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맡아 잠시 서울에 올라온 스님을 조계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나는 대중에게 깨달음이 될 만한 말을 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며 인터뷰 내내 겸손해했다. 

―도시에 올라오시니 정신없으시죠. 

▷그렇죠 뭐. 백련암이 있는 가야산은 봄이 예뻐요. 새싹들도 다 같은 새싹 같지만 색깔이 모두 다르거든요. 도시에 오면 사람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어색해요. 백련암은 수행하는 암자라 신도도 별로 없는 곳이라 사람과 부딪칠 일이 없는데 서울에 오면 길을 걷는 것부터 어색해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중생들에게 한마디하신다면. 

▷인생은 어떻든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지는 인생이 무슨 자기 인생이겠습니까. 

―행복이 뭘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행복하다는 것은 만족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아함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처럼 소욕지족(小欲知足), 즉 작은 것에 만족하면 행복한 거죠.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겁니다. 

―어떻게 소욕지족에 이를 수 있나요. 

▷이기심을 버려야지요. 이기심을 버리면 양보가 가능해지고, 양보하면 만족이 점점 늘어요. 그런데 세계화 시대라 비교할 게 많아지니까 만족이 점점 줄고 정신적으로는 점점 궁핍해지고 있는 거죠. 비교 대상이 너무 많은 거예요. 지평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불행해지는 겁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세계화 시대에 만족을 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내 비교를 버리는 거예요. 실천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것이 최고의 인성이죠. 

―죽음은 무엇인가요. 

▷문이 닫히는 순간입니다. 이쪽 세계도 모르고 저쪽 세계도 모르는 순간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윤회의 세상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걸 알 수가 없어요. 그냥 문이 닫히는 거겠죠. 그래서 살아서 하나씩 둘씩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거예요. 문이 닫히는데 뭘 기억하고 뭘 챙겨서 가겠어요. 

―남은 생에 꼭 이루고 싶으신 일은. 

▷성철 스님께 `저도 깨쳤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생을 끝낼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일이겠죠. 못 이루면 내가 부족한 거고, 얼마나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는 날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견성성불하는 게 큰 바람이죠. 백련암은 일반 신도를 위한 법문보다 참선하는 도량이어서 나도 말하는 걸 배우지 못했어요(웃음). 성철 스님은 차든 붓글씨든 뭐가 됐든 참선 이외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나도 말을 못해요. 그리고 나는 내가 1등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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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불교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대구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불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연세대학교에는 불교학생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조계사에 찾아가고 그러면서 불교와 연을 이어갔죠. 

―성철 스님을 처음 뵀을 때 어땠나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고시 공부할 때였는데 친구가 해인사 백련암에 엄청난 스님이 계시다고 해서 따라갔었죠. 그런데 그동안 뵀던 스님과는 다른 거예요. 형형한 눈이 호랑이예요. 사람 속을 다 뚫어보는 눈이더라고요. 그 눈빛 하나에 무너졌죠. 그때 내가 건방지게 "스님, 좌우명 하나 주세요" 했더니, "공짜 없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얼마입니까" 그랬더니, "절돈 3000원 내놔" 그러시는 거예요. 3000배 하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내가 "너무 비쌉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이놈 봐라" 하시더니 "넌 안되겠다. 넌 1만배를 해라" 그러시는 거예요. 1만배는커녕 근처도 못 가보고 끙끙거리며 내려왔더니 스님이 그제야 웃으시더군요. 

―좌우명은 받으셨나요. 
▷집에 가려고 인사드리러 갔더니 `속이지 마라`는 좌우명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실망했어요. 너무 당연하고 뻔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이 말이 `남을` 속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속이지 말라는 뜻이었던 거예요. 심오한 말이었던 거죠. 그래서 몇 달 후 그 말뜻을 더 캐물어보려고 다시 스님을 찾아갔어요. 그때 가서 1년 정도 스님께 참선을 배웠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출가가 된 거죠. 1972년이었네요. 

―성철 스님은 왜 3000배를 강조하셨죠. 

▷정확한 이유를 말씀해주지는 않으셨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3000배를 해본 신도들은 이상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고 있어요. 그것이 꼭 3000배를 한 덕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만족도 같은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 스스로를 속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게 3000배거든요. 3000배가 가져다주는 영적인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종교의 위기라는 지적도 많은데. 

▷예전에는 종교인들이 중생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중생이 종교인을 걱정하는 시대가 됐어요. 거꾸로 된 거예요. 옛날에는 스님만 봐도 도 닦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스님을 보고 도를 느끼는 중생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요. 

▷이제는 종교가 하던 일을 사회가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병에 걸려도, 아들을 못 낳아도, 밥을 굶어도 종교에 기댔는데 지금은 병원이나 사회가 해주잖아요. 게다가 지식의 창구로서 종교의 역할도 줄어들었어요. 스님들이 가져야 할 혜안을 컴퓨터가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종교인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요즘 신도들은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전 세계의 훌륭한 스님들을 접할 수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제 신도들을 상대하려면 영적 능력과 명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과연 그런 수준의 스님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런 노력을 하는 스님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예요. 

―요즘 청소년들이 참 힘들어하는데.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왜 불쌍하냐 하면 모두 외둥이들이잖아요. 가족 친척 관계에서 배우는 것이 있거든요. 인간도 동물이라 집단생활에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건데 그걸 박탈당하고 사는 거죠. 고독을 호소할 데가 없다는 것, 그런 생처럼 불쌍한 생은 없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 요즘 청소년들에게 닥친 문제는 일자리나 이런 게 아니라 `외톨이`라는 거예요. 그런 외톨이들을 교육이니 뭐니 해서 옥죄고 있으니 큰일이죠.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요. 

▷`하면 된다`고 가르치면 안돼요.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기다려주고 시간을 주고 위로를 해줘야지, `하면 된다` 이런 거를 주입하면 안돼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감싸주고 해야죠. 

―가장 좋아하시는 불경 구절은 뭔가요. 

▷금강경의 끝부분에 나오는 구절인데 `모든 행위가 있는 법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불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는 구절입니다. 성철 스님 사진집 제목인 `포영(泡影)집`이라는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원택 스님 하면 성철 스님이 늘 같이 떠오르는데 어떠세요. 

▷저야 불편할 게 없죠. 제가 성철 스님을 미화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 반대예요. 제가 실력이 없어서 성철 스님을 제대로 못 드러내고 있어요. 죄송스럽죠. 

―성철 스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쓰신 책 `성철스님 시봉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아마 어려운 큰스님 이야기를 쉽게 써서 대중이 많이 읽은 것 같아요. 그리고 성철 스님께서 돌아가신 후 매스컴에서 성철 스님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했고요. 제 글재주가 좋아서 팔린 건 아닙니다. 

―남북한 불교 교류 총책임자를 맡으시자마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이제 정부 차원의 큰 틀은 만들어졌으니까 나머지 부분들은 민간에서 긴 시간을 두고 채워나가야겠지요. 아직 직접 평양과 교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중국을 거쳐야 하는데 최근 남측에 보내는 발원문이 왔어요. 부처님오신날 조계사에서 평양 광법사와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벌써 평양에 가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섰는데 아직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습니까. 

―민추본부장으로서 가장 이루고 싶으신 일은. 

▷현재까지는 금강산도 내금강만 갈 수 있었는데 금강산 전체를 가보고 싶어요. 금강산은 1만개 암자가 있었다는 중요한 기도처이자 성지입니다. 금강산 성지순례 같은 걸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묘향산 보현사도 서산대사가 기병하셨던 절이니까. 여기서 법회를 올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성 주변의 성불사 등 성지도 갈 수 있으면 좋겠죠. 제가 꿈꾸는 일은 자유 왕래입니다. 이것만 되면 모든 민간 교류는 가능해집니다. 

 원택 스님은… 

194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성철 스님이 열반하신 1993년까지 곁에서 지키며 시봉(侍奉) 생활을 했다.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해인사 백련암 주지다. 조계종 백련불교재단 이사장,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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