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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정철_북한 미사일, 김정남 그리고 ‘대안적 사실’론
등록일 2017-02-24
 
북한 핵에 대한 진실의 문이 열려가고 있다.
이 개문(開門)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건지, 종이 호랑이를 불러내는 해프닝으로 끝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전략적 인내의 실패와 북극성 2형 미사일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맥매스터 장군은 몇 번의 강연에서 북한을 핵 국가로 서슴없이 지칭해왔다. 한반도가 매우 위험한 상태임을 강조하는 그의 속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행동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무시하고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기만을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라는 노선을 견지함으로써 북한의 핵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편향을 갖고 있었다면, 오바마의 대외 정책을 강력히 비판해 온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는 오바마 행정부와는 시작부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평가를 촉발시킨 것은 최근 북한이 보인 미사일 투발 실험이었다. 북한이 지난 2월 12일 발사 공개한 소위 ‘북극성 2형’ 미사일은 두 가지 점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는 북한이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무한 궤도형 이동식 발사 차량에 탑재되어 있는 발사체라는 점에서 한미 정보 자산이 사전에 탐지, 요격하기 어려운 무기라는 점이다. 소위 선제공격으로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무력화한다는 한국형 킬-체인 전략이 무의미해졌다는 비판 때문에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전략적 인내라는 주류 담론을 좇아 북한의 능력(capacity)을 ‘무시’해 온 사이, 그들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부쩍 커 버린 것이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
 
한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대변인이 사용한 ‘대안적 사실’ 개념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주류 언론이 보여주는 허상(fake news)과는 다른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지만 역시 언론에 난타당하고 말았다. 필자가 여기서 트럼프 식의 ‘대안적 사실’론에 동의할 의사는 없다. 다만 주류와 비주류 혹은 주류와 신주류간의 공방에는 실체(substance)에 대한 선택뿐만 아니라, 각 진영이 선택한 실체가 증거로서의 사실과 어떤 인지/커뮤니케이션 패턴을 교호하는가라는 방법적 논란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사실 특정 담론은 특정 사실과의 연대를 통해 물리적 힘을 가져왔다. 이 점에서 ‘대안적 사실’은 새로운 대항 담론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대안적 사실’론이 힘을 갖지 못한 것은 사실의 선택 과정이 대안적 체계로서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동시에 제시된 사실 그 자체가 조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에서 트럼프의 ‘대안적 사실’은 시간이 더 필요한 미성숙의 대안적 체계이거나 애초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잡종적 체계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조금 돌아온 느낌이 있지만 다시 북한 얘기로 돌아가자. 북한의 지도부는 선구적으로 ‘대안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해왔다. 누가 자신을 미치광이(mad man)나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부르든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물질세계의 강력한 대항 무장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무려 30여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그들이 대를 이어 개발해 온 핵 무장력은 그 과정에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가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절대 반지와 같은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물리력이 북한의 리더십과 관료층의 서열마저 결정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그 단적인 예이다.
 
김정남 사건과 소위 '대안적 사실'론
 
김정남 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북한에 대한 공분은 높지만 실체와 과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북한은 김정은에 대한 ‘대항 리더십의 공백’을 즐기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 김정남이 한국으로 들어온 후를 상상해 본다면, 김정남이라는 존재의 망실은 북한이 추구해온 ‘대안적 사실’의 체계를 더 강고하게 해주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으로 말레이시아가 북한과 단교라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북한이 잃을 손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다루는 북한이 국제 사회의 공분을 산다고? 소위 ‘우리가 인식하는 국제 사회’에서 북한이 그런 국가가 아니었던 시절이 언제 있었던가? 김정남 사건을 통한 북한에 대한 규탄 역시 글로벌 주류 질서의 자기 강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그 사건의 진행 과정과 도덕 판단을 재론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김정남 사건에 대한 규탄이 북한이 추구해 온 ‘대안적 사실’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그것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그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태의 원인보다는 결과가 만들어 주는 물리적 재분배에 주목해 온 북한에 비해 우리는 훨씬 더 원인으로서의 담론과 말의 힘에 주목해 왔다. 담론은 미시적(micro) 정체성과 중범위(meso)적 규범 그리고 거시적(macro) 문화 맥락이 일관성을 갖고 정렬될 때 힘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동시에 급변하는 질서 변동기에는 되려 물리적 세계와 물질적 질서가 더 큰 힘을 갖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의 주류 담론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정체성과 규범 그리고 문화 맥락의 변화를 동시에 한 방향으로 정렬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탄핵 국면을 맞아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주류 담론은 춤추고만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김정남 사건이 빨갱이 담론을 재강화시키고 있다지만, 질서 변동기 새 질서의 맹아를 꽃 피우는 것이 기존의 주류 담론일지 대안적 물리력일지 그 미래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해석에 의문이 생길 때는 물으라 했다. 격물(格物)로 얻어지는 이치가 무엇이냐고? 
 
 
*전문가 칼럼은 민추본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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