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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정철_판문점 선언과 길잡이
등록일 2018-05-01


지난 박근혜 정부 시기 한국 외교를 책임진 외교부 엘리트주의자들에겐 미국과 중국의 두 슈퍼파워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 이상의 중요한 외교 과제는 없었다. 한국 스스로의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향해 매진하는 돌파방식이 아니라, 외교의 성공 자체를 강대국 간의 균형화라는 현상 유지 목표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의 구조적 역관계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사이, 이들 간의 균형이라는 목표 하에 지속된 미세 조정(alignment) 외교는 한국 외교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점점 더 한국 외교의 기회주의성만 드러낼 뿐이었다. 전략적 목표 설정 행위나 비전 없는 조정외교의 한계는 분명했다.
 
한반도 운전자론과 길잡이 역할
 
문재인 정부가 애초에 내건 외교 기치는 한반도 운전자론이었다. 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미중 강대국 간의 균형이나 조정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 키를 잡겠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한국 문제, 북한문제 나아가 두가지가 복합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소유권을 포기해서는 안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한미중 3자회담론과 같은 사대주의적 발상과의 명백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단절은 우리 외교의 기본 전략은 < 남북관계 진전과 4강외교의 균형 발전 >이라는 오래된 노선으로 회귀한다는 선언이었다. 지난 10년 한미동맹 몰입론, 미중 균형조정론(alignment)등과 같은 보수정부의 노선을 대신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우리 외교의 기본 문법이었던 오래된 공식을 되살리겠다는 것이었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높여 준다는 경험에 근거한 발상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베를린 선언으로 나타났지만 그에 대한 반향은 미미했고 북한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끈질긴 구애는 마침내 평창 올림픽에서의 화해 국면으로 이어졌고 남북의 극적인 합의를 낳기에 이르렀다.
 
현 정부는 이런 두가지 단절이 한반도 평화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회담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잡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회담의 성패는 결국 북미회담에서의 담판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의 구성적 프레임
 
판문점 선언은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정상회담 의제와 비교해보면 그 순서와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 회담 전 문재인 정부가 내건 정상회담의 3대 의제는 < 한반도 비핵화 / 군사 긴장완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 새롭고 담대한 남북관계 진전 > 이었다.
 
이에 비해 <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 /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와 전쟁 위험 해소 /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 이라고 규정한 판문점 선언은 남북 관계를 가장 앞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그 순서를 달리하고 있다.
다음으로 판문점 선언은 그 구성에 차이가 있다. 평화체제를 2조의 재래식 무기와 관련된 긴장완화 요인과 3조의 핵문제와 관련된 긴장 완화 요인으로 분해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순서와 구성의 변화는 판문점 선언이 남북의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가는 데 가장 일차적 목표가 있는 실행 선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북 당국은 1, 2 조에서 남북관계의 전면적 개선과 이를 위한 군사적 보장 조치를 병행 진행함으로써,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3조에서는 비핵화를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성적 요소로 다룸으로써, 비핵화-평화체제 병행론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소위 병행론의 관점에서 북미회담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길잡이 선언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사용된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기존 남북 합의문에 등장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지만, 동시에 ‘완전한’이라는 서술을 통해 비핵화의 목표와 방법을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고 이에 호응하여 남북이 각자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한 것은 상호주의의 매우 중요한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컨대 이번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외교적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안보(common security) 프레임에 기반한 군비통제와 비핵화의 병행 프로세스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조치이다. 길잡이 선언인 판문점 선언이 평화의 항로를 끌어가는 운전자가 되고 있다는 확신도 이에 연유한다.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한반도 문제의 정상화를 이끄는 원인이자 그 결과가 되고 있는 역사적 선순환 현장에서 우리의 눈과 귀가 연일 감동을 즐기는 것은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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