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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진환_적대감은 빼고 존중감은 더하자
등록일 2019-01-29


 
최근에 한 평화학자의 강의를 듣다 흥미로운 개념을 알게 됐다. 요한 갈퉁이 평화 개념을 세분화하며 평화정착의 어려움을 강조해왔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갈퉁은 직접적 폭력인 전쟁과 군사적 충돌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 사회적 착취, 차별, 억압 같은 구조적 폭력과 이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사라진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정의한다.
 
그런데 앞의 평화학자는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라는 번역이 오히려 이해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뺄셈의 평화’, ‘덧셈의 평화’라는 개념을 수강생들에게 소개해줬다. 곧 전쟁과 군사적 충돌을 막으려면 적대감과 불신은 빼야 하고, 여기에서 나아가 사회적 착취, 차별, 억압까지 제거하려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모든 곳이 ‘중심’이며 어떠한 곳도 ‘주변’은 아니다”라는 갈퉁의 주장(요한 갈퉁 지음·이재봉 외 옮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2000년, 들녘, 30쪽) 역시 상호 존중에 대한 강조로 읽을 수 있다.
 
이 흥미로운 개념을 가지고 지난해를 평가하면, 2018년은 한반도에서 ‘뺄셈의 평화’를 향한 여정이 본격화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2017년까지 우발적 군사충돌이 언제 일어나도 의아스럽지 않을 정도로 대결 일변도를 치닫던 남북 당국과 트럼프 행정부가 적대감과 불신을 과감하게 덜어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남북 당국은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해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했다. 또한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내 전방 감시초소(GP) 철수와 한국전쟁 유해 공동 발굴,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6월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 안전보장을 서로 약속했고,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들어서도 ‘뺄셈의 평화’ 기차는 더디지만 멈춤 없이 달리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한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 추진을 남한 당국에 제안한 뒤 전격적으로 정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을 찾았다. 2월 말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속도를 붙일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촉진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렇게 당국 간에 적대감과 불신을 빼는 것만으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반세기 전에 인류가 깨달은 지혜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서 1944년 사이 연합국 교육 장관들은 런던에 모여 교육 재건과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 창설을 논의했고, 이 결과 1945년 11월 16일 런던에서 37개국 대표가 유네스코를 창설했다. 유네스코는 헌장 서문에 다음과 같은 지혜를 담았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며, 이 의혹과 불신으로 인한 그들의 불일치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 (…)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영속적이며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영속적 평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국 뿐 아니라 시민의 몫이 있고, 시민 역할의 핵심은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를 극복해 “지적·도덕적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9년에는 우리 모두 ‘뺄셈의 평화’ 못지않게 ‘덧셈의 평화’에 힘을 쏟아보자. 첫째, 두터운 적대감과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 곧 ‘뺄셈의 평화’가 당국 뿐 아니라 나와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국 간 화해는 갈등하던 상대국과 화해를 바라는 주권자의 의지가 커질수록 빨라지고 안정화된다.
 
둘째, 적대감과 불신의 벽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덧셈의 평화’를 향한 여정을 본격화해보자.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고 “지적·도덕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 과제는 바로 상호 만남과 교류다. 남북 당국이 이른바 ‘사회문화 교류’를 적극 보장하고, 남북 주민들이 만남과 교류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의 마음을 키워나간다면, 한반도의 영속적 평화는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전문가 칼럼은 민추본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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