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 민추본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만의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ߺ(newsletter)

통일단비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에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제목 이정철_숙적의식(rivalry)의 극복과 대북 인도주의 협력
등록일 2019-08-29


대북 협력 얘기지만 일본 문제로부터 시작하자. 현안에서 문제를 접근하면 본질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아베로부터의 반면교사
 
일본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인 경제대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을 통제하는 힘은 대국에 걸맞지 않게 시민사회가 아니라 국가 즉 정치권력에 있다. 소위 자본과 국가 권력간 혼연 일체화의 순도가 높아 시민사회의 설 자리가 없는 체제가 된지 오래다. 정치학 교과서들이 일본의 정치 체제를 민주화된 일당독재 체제라 묘사해 온 것도 상식이었다. 이런 희한한 체제에서 국가안보 이외에 시민의 권리에 기반한 인간안보라는 개념이나 시민 간 연대의 근원이 되는 인도주의라는 개념이 꽃필 리 없다.
반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여러 면에서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반제 반식민지 투쟁 그리고 반독재 투쟁의 역사에 근거한 시민사회의 전통이라는 면에서는 독보적이다.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지닌 체제인 이유이다.
작금의 한일 갈등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들도 있지만, 어차피 다가올 일이었기에 걱정할 일은 아니다. 어려운 고비임에는 분명하지만 또한 언젠가는 넘어야할 일이었기에 우리 시민사회는 아래로부터 응전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할 나위 없다. 퇴행적 제국의 국가 권력이 정권-사회-민중의 연대체를 이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나라와 민족, 정권을 넘어서는 시민사회와 평범한 사람의 연대는 불패다. 그것은 한국이 일본을 이기거나 일본이 한국을 이겼다는 식의 유치한 기록일 수가 없다. 정파적 이해로 무장한 특정 정권과 국가주의가 인도주의와 글로벌 가치에 근거한 시민사회와 평범한 사람, 인류의 연대에 무너졌다는 서사이다.
 
아베식 숙적의식(rivalry)의 극복
 
아베의 정파적 이해에 불을 지른 것은 아무래도 6.30 남북미 정상회담이었을 것이다. 일본 패싱(Japan Passing)이라는 위기감 그리고 그 위기가 남과 북의 연대와 협력에서 비롯된다는 강한 거부감 그리고 오래전부터 시작된 남북 정권에 대한 숙적의식 그것의 혼종 효력이었을 것이다.
남북 정권에 대한 ‘손보기’에서 시작된 아베 정권의 퇴행적 작태가 보일 희비극으로부터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정권과 국가를 사유화해 온 일본식 정치와 외교의 퇴행적 모델이다. 경쟁의식과 숙적의식(rivalry)에 빠져 눈앞의 이해에만 몰입하다보면 굽이치는 역사의 대하가 시작되는 소점을 이탈하게 된다. 근사해 보이던 개별 정책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전체 구도가 엉망이 되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어우러진 역사의 장이 그리는 장엄한 소점이 서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권력의 사유화와 무한 대결은 계속된다.
이미 시작된 싸움에서 아베의 일본호가 혼란스러운 길을 갈 것은 예상 못할 바 아니다. 소점을 이탈하게 만든 숙적의식이 백년 전쟁의 먼 길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의 역설과 위험한 총력전
 
남북 간에도 지독한 숙적의식과 무한 경쟁이 작동하고 있다. 한번 북한 정권과의 대결주의에 빠지면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늪을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정권에 대한 맞춤형 압박이라는 상식의 틀을 벗어나, 북한의 시장을 붕괴시켜서라도 정권을 굴복시키겠다는 극단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대북 제재가 정권과 사회를 구분해 온 정상적인 틀을 벗어나 북한의 시장을 붕괴시키더라도 정권을 굴복시키겠다는 극단주의로 나아간 지 오래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사회를 구분할 줄 모르는 아베의 대북 제재론이 그같은 무한질주를 거듭한 결과 출구 없는 미로에 빠져 헤매고 있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아베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북한에 대해 숙적의식에 빠진다면 아베의 실패가 우리의 실패가 될 것이다. 또한 아베에게 굴복한 박근혜 정권의 실패가 재현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아베의 실패로부터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정권의 핍박을 받는 인민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경제 제재가 그 인민의 피땀을 짜는 데서 출발한다면 그 제재의 정당성은 인정받기 어렵다. 그것은 21세기형 맞춤형 제재가 아니라 체제 붕괴를 목표로 한 위험한 총력전일 따름이다. 한 사회-국가 체제 자체를 역사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는 숙적의식, 거기 어디에도 인도주의라는 정당성과 민주적 우월감을 찾기는 어렵다.
 
인도주의 가치의 정당성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배신감이 고개를 들기 쉽다. 그러나 이젠 배신감과 숙적관계의 상승작용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인도주의 가치란 정권 간의 대결이나 엘리트 간의 숙적관계와 무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북한의 인민과 우리 국민들이 상호 소통하는 길이 막혀서는 안 된다. 연일 쏘아대는 미사일 가격을 매기고 이에 대응하는 것과 그들 인민들에게 주어질 인도주의 지원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동급의 가치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전자가 쓰라린 상호주의에 기반 해야 한다면, 후자는 미래 세대를 위한 무한 투자와 공공재의 영역이다.
냉정을 잃지 말고 근시안적 충동주의를 경계할 때다. 인도주의 기치 하의 대북 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에 사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사회를 우리가 나서서 질식시킨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우리 안의 아베, 우리 안의 왜구가 준동하는 방법이야말로 반북의 길임을 되새길 때다.
 
 
 
**전문가 칼럼은 민추본의 공식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다음글
이전글 김진환_사건만 보지 말고 상황을 주목하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