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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대방]'이산의 아픔'이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등록일 2015-05-28
 
최근에 없던 병을 하나 얻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별 것 아닌 병일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고통’을 알아주기를 바랐나보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더 자주 짜증을 부렸으니 필시 내 마음이 그랬던 거다. 그러다 아내가 때마침 읽던 책 제목에 눈길이 갔고, 이후부터 마음을 고쳐먹으려 애쓰는 중이다. 책 제목은 이랬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처럼 수양 부족한 사람은 ‘내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타인의 고통에 눈길 돌리지 못하기 일쑤다. 우리 민족 구성원이 이산의 아픔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 남과 북이 좀처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다보면 ‘보고 싶은 가족을 보지 못하는 고통’은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이 겪고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지난 수 십 년, 그 길고 긴 세월동안 가슴에 그리움을 켜켜이 쌓아온 남북 이산가족의 고통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냐마는, 가족과의 생이별, 기약 없는 기다림이 어디 우리 민족만의 불행이겠는가.
 
 
‘독일사람’ 레나테는 1955년 9월 북한에서 동독 예나로 유학 온 홍옥근과 사랑에 빠졌다.
 
“9월 개강 파티 행사 때였어요. 탱고, 왈츠, 독일 민속춤 등을 추는 댄스파티가 있었지요. 북한 학생들이 그 행사를 위해 라이프치히에서 열심히 춤 연습까지 해왔더라고요. 그날을 위해 여학생들은 특별히 고운 옷을 차려입었고요. 그때 옥근과 나는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그의 춤 솜씨는 근사했어요. (…) 파티가 끝나자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자기 기숙사로 돌아갔어요. 그러고 나서 가슴 떨리는 사랑이 시작됐지요. 그날 그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네요.”
 
레나테의 나이 열여덟 살에 시작된 홍옥근과의 사랑은 1960년 결혼과 첫째 현철 출산, 둘째 우베 임신으로 잇따라 꽃을 피웠다. 하지만 꿈결 같던 시간은 잠시뿐. 레나테와 옥근에게 곧 길고 긴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1961년 4월 북한에서 옥근에게 귀국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내게는 가장 슬픈 날이었어요. 남편은 가방 몇 개랑 짐을 들고 플랫폼에 서 있었지요. 그리고 얼마 후 베를린행 기차가 들어왔어요. 우리에겐 이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 오전 10시, 기차가 떠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 아들이 두 손을 벌리고 ‘아빠’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그이의 눈과 얼굴을 봤어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 그게 내 기억의 전부예요.”
 
 
이후 2년 여 동안 수십 통의 편지로 그리움을 달래던 레나테와 옥근은, 1963년 2월 옥근의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생사조차 알 길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레나테가 옥근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건 그로부터 25년도 더 지난 1989년이었다. 그해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 학술 교류를 위해 동독을 찾은 옥근의 친구는 옥근이 함흥에서 과학자로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레나테는 바로 그 친구를 통해 자신과 두 아들의 안부를 옥근에게 전하려 했지만 이후 그 친구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북한이 둘러놓은 장벽은 여전히 두텁고 높았던 것이다.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던 레나테와 옥근의 재회는, 둘이 헤어진 지 45년만인 2006년 가을, 『중앙일보』 독일 특파원 유권하가 레나테의 사연을 기사화하면서 기약 없는 바람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간다. 유 기자의 기사는 독일과 한국의 정부, 정치권, 언론, 나아가 유엔까지 둘의 재회를 위해 움직이게 만들었고, 독일 정부, 적십자사, 동독 출신 정치인 등이 북한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마침내 2007년 7월 27일, 레나테의 70번째 생일날 옥근의 편지가 레나테를 찾아왔다.
 
“사랑하는 레나테. 당신의 편지를 받고 크게 감격했소. 무엇보다 당신이 건강하다니 기쁘오. (…) 정치란 때론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곤 한다오. 나는 (당시) 잘못된 희망을 가졌었소. 우리의 국제적인 사랑은 그런 고통을 가져왔고, 나도 항상 당신과 두 아들의 만남을 갈망해왔다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해왔소.”
 
 
이후 레나테와 옥근이 몇 차례 더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독일 정부는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북한을 설득했고, 결국 레나테와 옥근,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 현철, 우베는 2008년 7월 25일 오후 4시 20분, 평양 순안공항에서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었다. 동독의 한 기차역에서 헤어진 지 47년 만의 상봉이었다. 그날 옥근은 재회의 선물로 ‘붉은 보석이 박힌 예쁜 금반지’를 레나테에게 건넸다.
 
“그이는 우리가 재회한 첫날, 이 반지를 주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다시 결혼식을 치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 (…) 반지는 우리가 아직 연결돼 있다는 영원한 사랑의 증표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지.”
 
며칠 뒤인 8월 5일 옥근과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독일로 돌아온 레나테는 8월 8일자로 옥근에게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하는 편지를 보냈다.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당신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상봉이 끝이 아니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요. 당신은 다행스럽게 건강하잖아요. 이전부터 우리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랑의 인사를 보내며.” 책에 담긴 사연은 여기까지다. 레나테와 옥근은 다시 만났을까? JTBC 2013년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다시 북으로 간 레나테 홍’을 이 책과 꼭 함께 보기를 권한다. 이산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간 홍옥근의 극락왕생을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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