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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대방]그들에게는 아직 빛이 닿지 않았다
등록일 2015-07-24
 
곧 광복절이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解放) 그 날을, 우리는 잃었던 빛을 되찾은(光復) 날이라는 뜻의 광복절로 부른다. 그런데 그 빛은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고루고루 퍼져나갔을까? 이 책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을 차분히 읽다 보면,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낯선 진실 하나를 적나라하게 접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이 우리 민족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는 광복절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일본이 전쟁에 패했을 때,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됐을 때 일본에는 약 230만 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다. 당시 조선인 10명 중 1명은 일본에 있었던 셈이다. 해방이 되자 이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일본에 남았다. 일제가 1940년대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강제연행한 조선인들은 일본에 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숫자가 돌아간 반면, 식민지배로 조선에서의 생활이 파괴되자 1920년대, 1930년대에 생활터전을 찾아 온 조선인들은 가족이나 생활기반이 일본에 있던 탓에 많은 숫자가 남았던 것이다(책 128쪽). 이들이 바로 재일조선인 1세다.
 
일본에 남은 이들과 그들의 자손은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파란만장한 차별과 핍박을 받았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고통 받고 있다. 먼저 일본 정부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었던 재일조선인을 무책임하게 국가 밖으로 내쫓았다. 일본 정부는 1947년 ‘외국인 등록령’을 발표해 조선인을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면서 재일조선인에게 외국인 등록을 요구했다. 문제는 외국인 등록 때 적어야 하는 ‘국적’이었다. 1947년 당시 한반도에는 아직 ‘국가’가 없었고, 그래서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이라는 민족 기호를 국적란에 대신 적었다.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이렇게 출현했다. 곧이어 일본 정부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완전히 박탈했고, 이에 따라 재일조선인은 졸지에 국가로부터 어떤 기본권도 보장받을 수 없는-당시에는 일본과  한국이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없었다-무국적 난민이 되고 말았다.
 
일본 국적이 없는 재일조선인은, 예를 들면 공영 주택에 입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다수가 가난한 이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의 움막 같은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서 어렸을 때, 제가 아프면 부모님은 의료비를 전액 자비로 지불했습니다. 국민연금에도 가입할 수 없었고 공무담임권도 없어졌습니다(책 141쪽).
 
1965년 한ㆍ일조약 체결로 전후 20년 만에 무국적자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재일조선인의 신산한 삶은 그래도 계속됐다. 1980년대까지 한국 정부는 한국적 재일조선인의 권리문제에 무관심했고, 그 덕분에 일본 정부는 마음 놓고 재일조선인을 차별할 수 있었다. 재일조선인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국가 공무원, 공사 직원, 경찰관, 공립학교 교사가 될 수도 없었다. 1977년까지는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으면 변호사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었다. 개인적 이의 신청, 집단적 시민운동,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문제제기 등에 힘입어 진입장벽을 뚫고 어렵사리 공립학교 교사나 공무원이 되더라도, 두터운 차별의 벽은 여전히 앞에 놓여 있다.
 
1991년에는 한일 양 정부 간에 공무원 임용에 관한 합의를 합니다. (…) 그 합의로 일본은 재일조선인의 공립학교 임용은 ‘교사’가 아닌, ‘상근 강사’로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 이렇게 해서 일본 국적이 없어도 채용하게 되었지만, 채용 후에도 줄곧 ‘교사’와의 차별이 계속됩니다. (…) 도쿄의 보건사인 정향균 씨는 관리직 승진 시험을 보려고 했지만 일본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도쿄 도를 상대로 수험 자격 확인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에서는 정 씨가 패소했지만, 2심인 도쿄고등법원은 ‘외국인의 관리직 승진의 길을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하여 정 씨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정 씨의 청구를 물리치는 역전된 판결을 내렸습니다. (…) 정 씨는 후배들이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정년을 맞이했습니다(책 192~193쪽).
 
1965년 이후 무국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지 않고, 곧 한국적이나 일본적을 취득하지 않고 스스로 무국적자로 남은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일단 그들은 한국적 재일조선인과 마찬가지로 ‘특별영주’ 자격으로 일본에 영주할 수는 있지만, 여행, 일, 유학 등으로 외국에 갈 때마다 ‘재입국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한국적 재일조선인이 겪고 있는 ‘모든’ 차별을 함께 겪고 있다. 여기에 더해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북․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그들이 실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관계없이 ‘조선적=친북’이라는 편견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끝으로 이들의 한국 입국도 현재는 가로 막혀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해방 직후부터 재일조선인이 조선 민족의 말, 역사, 문화 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고 키워온 ‘조선학교’-2015년 현재 유치원 38교, 초급부 53교, 중급부 33교, 고급부 10교, 대학교 1교에 약 8,000명 재학 중-를 아직도 정규 학교로 인정하지 않고 자동차교습소나 학원 같은 ‘각종학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학교 아이들은 통학정기권 구입 때 학생 할인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각종 스포츠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거나, 대학 입학 수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다양한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 왔다(지구촌동포연대 엮음, 『조선학교 이야기』, 선인, 2014, 22~23쪽). 또한 일본 정부는 2010년 4월부터 고등학교 수업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고교 무상화 제도’를 시행하면서 조선고급학교 10개교만을 제외했고, 일본 사회의 반북․반한 여론을 핑계로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되찾은 빛이 아직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는 닿지 않은 셈이다.
 
이 책은 애초 일본에서 “중학생까지 포함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간행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재일조선인은 누구인가’를 가능한 한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서경식이 이 책에서 재일조선인이 받고 있는 차별을 상세히 서술한 이유는 단순히 일본 젊은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소개하거나, 이런 실상에 무지한 일본 젊은이들을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본 젊은이들이 재일조선인 차별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선입견과 편견, 민족과 국가의 경계 등을 넘어 일본 사회를 차별 없는 사회로 만들어달라는 게 저자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러한 저자의 당부는 원서가 나온 지 반년 여 만에 나온 한국어판에서도 계속된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을 한국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일본 사회는 이렇게 병들었다든지, 일본인의 다수는 이렇게 차별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 있는 ‘일본’이란 단어를 ‘한국’으로 치환하며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재일조선인’이란 단어를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연변 조선족’ 등으로 바꾸어보세요. 그럼으로써 제가 이 책에서 ‘일본인’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 저는 이 책을 읽는 국내의 여러분이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오히려 재일조선인 속에서, 혹은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이는 계속되는 식민지주의와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책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서경식의 진심 어린 당부처럼, 재일조선인을 연민하는 것을 넘어서, 또는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서, 재일조선인처럼 ‘고통 받는 소수자’의 고통을 상상해내고 공감할 줄 아는 한국인들이 많아질 때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분명히 더 나아질 것이다. 70년 전,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빛을 되찾아 온 선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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