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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대방]소통·치유·통합의 통일 이야기
등록일 2015-09-25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준 교훈 중 하나는 통일은 결코 ‘제도의 통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도의 통일을 이룩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독일에서 ‘사람의 통일’은 아직도 지난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제도의 통일’이 분단된 두 국가가 정치제도나 경제제도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면, ‘사람의 통일’이란 민족 구성원이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함께 치유하고 서로의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동서독은 분단 시절에 풍부한 인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기회를 가진 뒤 통일을 했다. 1972년 12월 양독 관계를 정상화 한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연간 500~700만 명 정도의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했고, 동독인 역시 연간 150만 명 정도가 서독을 방문하다가 1987년 동독 최고권력자 호네커의 서독 방문 이후에는 서독과 비슷한 수준인 연간 500~600만 명이 서독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여전히 상대 지역 출신 주민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가난하고 게으른 동쪽 놈이라는 의미를 담아 ‘오씨’(Ossi)라고 비하하고,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거만하고 게으른 서쪽 놈이라는 의미를 담아 ‘베씨’(Wessi)라고 빈정거린다. 동서독 출신 사이에는 아직도 ‘의식의 장벽’, ‘마음의 장벽’, ‘문화의 장벽’ 등이 놓여 있는 셈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일제 식민지배가 남북분단의 기원이 됐고, 한국전쟁은 남북분단을 고착화시켰다. 따라서 남북분단 뿐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 한국전쟁 등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상처와 고통을 함께 치유하고, 일제 식민지배로 만주, 연해주, 사할린, 중앙아시아, 일본 등 각 지역으로 ‘강제로’ 흩어진 ‘코리언 디아스포라’까지 포함해 모든 민족 구성원이 함께 민족공통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사람의 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남북한은 동서독보다 더 긴 분단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서독에 비해 아직 턱없이 부족한 인적 교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독일과 달리 같은 민족끼리 막대한 인명이 희생된 전쟁을 치른 탓에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대단히 높고, 서로에게 입힌 상처도 많다. 우리 민족이 해나가야 할 사람의 통일이 독일 민족의 그것보다 더 힘겨울 수 있다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학계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의의를 지닌 사람의 통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이루어나가자는 문제의식이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있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은 2009년 출범해 2010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신생 연구소다. 연구이력은 짧지만 그동안 50여 권이 넘는 책을 냈을 정도로 연구역량은 가볍지 않다. 다만, 대부분의 책이 전문연구자들끼리 돌려볼 수 있을 연구서이거나, 아니면 일반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서(『석학, 통일인문학을 말하다』, 『통일담론의 지성사』,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9가지 트라우마』, 『우리가 몰랐던 북녘의 옛이야기』 등)이다보니, 정작 자라나는 통일세대인 청소년에게 읽힐만한 책, 초·중등 교육현장에서 활용할만한 교재의 빈자리가 컸었다.
 
『청소년을 위한 통일인문학』 발간은 이러한 빈자리를 채우려는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첫 시도다. 책은 ‘소통·치유·통합의 통일 이야기’라는 부제목에 맞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통일한반도를 위한 소통의 이야기」에서는 소통의 원칙으로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쌍방향 소통’을 제시한다. 또한 단절과 대결에서 소통으로 이어진 남북관계사를 분단, 전쟁, 당국 간 대화와 주요 합의, 민간교류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서술했다. 더불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꼭 필요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사람들의 의식, 생활, 언어 등에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2부 「통일한반도를 위한 치유의 이야기」에는 일제 식민지배, 강제이산, 남북분단, 민족상잔의 한국전쟁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과 노력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지가 적혀 있다. 남한 사람들의 대북 적대감이 한국사회에 정착한 탈북민에게 또 다시 상처를 가하고 있다며 소개한 한 탈북 실제 사례에는 특히 더 눈길이 간다. 한 탈북 청소년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친구에게 딱 한 번 했다는 이유로 학급 반장에 의해 간첩으로 신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 일로 그 탈북 청소년이 느낀 당혹감, 분함, 두려움은 어땠을까? 역시 ‘사람의 통일’로 가는 길에는 어여쁜 꽃만 있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가시덤불도 많을 것이다.
 
3부 「통일한반도를 위한 통합의 이야기」에서 제시하는 통합의 핵심 원칙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다. 우리 민족이 남, 북, 해외에 흩어져 살면서 각자 만들어온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의 차이를 서로 존중하며, 새로운 민족공통성을 만들어나가자는 게 3부의 큰 줄거리다. 이러한 민족공통성을 만들어가면서, 또는 민족공통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남북이 ‘분단의 아비투스’를 ‘우애의 아비투스’로 바꾸어가자는 주장도 새겨들을 만하다.
 
‘분단의 아비투스’는 남북이 상호 적대성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믿음과 성향의 체계입니다. 이와 달리 ‘우애의 아비투스’는 남북이 ‘민족애’를 기반으로 하여 통일을 이루어 가면서 남북 주민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믿음과 성향의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믿음과 성향의 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남과 북의 통일이 사람의 통일이 될 것입니다(책 239쪽).
 
교사들이 수업에서 좀 더 쉽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각 장은 ‘생각열기→본문→갈무리활동’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생소한 개념이나 사건은 ‘일러두기’, ‘짚고 넘어가기’에서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의 독서를 도와준다. 여러모로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통일교육 현장에서 이 책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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