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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대화의 초입에서 돌아본 ‘대화의 추억’『70년의 대화 :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록일 2018-02-26
 


 
격렬하고 참혹한 전쟁을 멈춘 남북 당국이 처음 양자대화를 가진 해는 1971년이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에 한반도 주둔 외국군 철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을 위해 열린 제네바 정치회담 때도 남북 당국이 마주 앉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는 양자회담이 아니라 무려 19개국이 모인 다자회담이었다. 그럼 1971년부터 2018년 2월 현재까지 남북 당국은 총 몇 차례나 회담을 했을까? 정답은 647회다. 분야별로는 정치회담이 가장 많았고, 인도, 경제가 뒤를 잇는다. 가장 자주 만난 곳은 판문점이다. 647회 중 절반 넘는 회담(357회)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대화 없는 2년(2016~2017)을 보낸 뒤 어렵게 가진 남북고위급회담(2018. 1. 9) 장소 역시 판문점이었다.
 
이러한 회담 관련 정보는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
(http://dialogue.unikorea.go.kr)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홈페이지에는 역대 모든 회담의 일정, 장소, 대표단, 경과, 남북합의서, 합의 설명자료 등이 일목요연하게 빠짐없이 담겨 있다. 남북회담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자료 창고인 셈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회담장 ‘안’에서 일어난 일만 알 수 있다. 일상에서도 시시각각 느끼듯, 모든 대화에는 모름지기 ‘맥락’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남북 당국은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필이면 그때 만났을까? 회담과 회담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공식 회담 자료로는 볼 수 없는 ‘숨은 1인치’는 무엇일까?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 자료들을 보다 보면 가질 법한 의문들이다.
 
『70년의 대화 :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는 이러한 의문들을 푸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스포츠 경기 중계 때 캐스터와 해설자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캐스터는 경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생생히 전달해주고, 해설자는 해당 종목, 선수 등을 둘러싼 다채로운 정보들을 곁들여 경기 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가 캐스터라면 이 책의 저자 김연철 교수는 해설자다. 대부분의 해설자가 해당 종목 베테랑이듯, 김 교수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노무현 정부 시기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하며 오랜 시간 남북 경제협력, 남북 당국 대화 현장을 누빈 베테랑이다.
 
김연철 교수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남북 당국 대화의 ‘안’과 ‘밖’을 매끄럽게 연결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북 당국이 회담장에서 나눈 이야기나 합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주력하기보다는, 회담 전후 남북 사이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남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차이, 탈냉전 같은 세계사적 전환,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 변화 등이 남북 당국 대화, 나아가 남북관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는 핵심은 책 프롤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남한 정부가 동북아 질서 변화를 잘 읽으면서 먼저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활발한 남북 당국 대화도,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이뤄진 대화 국면은 대체로 남한이 주도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국면은 그 전해에 박정희 정부가 적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1991~92년 남북기본합의서 국면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시작됐다.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도 북한이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남한이 환경을 만들고 북한을 설득해 이뤄냈다. 관계를 주도하지 못하면 상황에 끌려다닌다. 수동적 접근의 결과는 언제나 남북관계의 악화다.”(7쪽)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갑자기 중국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전쟁에서 서로 싸웠던 미국과 중국이 악수를 나누며 동북아 지역질서가 요동치자, 한국정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권이 급변하는 지각변동이 요인이었다. (…) 운동장을 넓게 사용하면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듯이, 동북아 지역질서의 변화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남·북·미 삼각관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중, 남·북·러, 한·미·중처럼 다양한 삼각관계 속에서 한국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고 활용할 수단을 찾아야 한다.”(9~10쪽)
 

저자는 2008년 이후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면서, 이 시기를 ‘제재의 시대’로 이름 붙였다. 2018년 2월 현재도 남북관계는 “제재의 시대”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1월부터 남북 당국 대화가 재개되고 활성화되고 있으니, 저자가 1970년대를 “대화가 있는 대결의 시대”로 불렀듯 현재 국면은 “대화가 있는 제재의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평창올림픽 덕분에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를 평창 이후까지 잘 살려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제 막 대화의 초입에 어렵사리 들어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김연철 교수는 지나온 대화와 단절의 역사 속에서 지혜를 찾아내자고 제안한다.
 

     “‘노마식도(老馬識途)’라는 말이 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로, 원정에 나간 군대가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다는 뜻이다. 남북관계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길을 잃은 지금, 남북관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298~299쪽)
 

끝으로 당연한 말 한 마디만 덧붙인다. 스포츠 경기 해설자가 하나가 아니듯 김연철 교수의 남북관계사 해설 역시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역사든 스포츠 경기든 수없이 다른 해석과 해설은 언제나 자유롭게 경합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김연철 교수의 의욕적인 남북관계사 해설이 다른 해설자들을 자극하면 좋겠다. 그럴수록 한반도 평화의 길 찾기도 수월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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