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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조난자들 :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등록일 2018-03-28





이 책 제목 『조난자들』을 처음 보자마자 몇 년 전 몸담았던 연구단 동료의 논문이 떠올랐다. 국내 거주 고려인, 사할린 한인과 한국인의 문화갈등을 다룬 이 논문에서 정진아 교수는 고려인, 사할린 한인을 포함한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역사의 조난자’로 불렀다. 나아가 그는 ‘허용되는 차별’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조난자를 위한 법·제도를 적극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이 논문을 읽을 때 북한이탈주민도 ‘역사의 조난자’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몇몇 혜택을 불편한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면 ‘허용되는 차별’이라는 시각에서 얘기해보자는 생각 등을 했었다. 이런 기억이 있기에 『조난자들』이란 제목이 인상 깊게 다가왔나 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망향의식을 다룬 논문이 생각났다. 이 논문은 지난해 여름 읽었는데 그 즈음 발생한 임지현 재입북과 겹쳐져 더욱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것 같다. 논문에는 북한이탈주민 재입북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북한이탈주민이 고향에 대한 기억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이 고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남한 사람들이 ‘그렇게 그리우면 도로 북한으로 가면 되지 않나’라는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남한 사람들도 대부분 타향살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망향의식을 맘 편하게 드러내면서 왜 북한이탈주민의 망향의식은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까? 논문을 읽는 내내 들었던 불편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 저자 주승현은 남북화해·협력이 한창이던 2002년 겨울 비무장지대를 단신으로 넘어온 군인 출신 북한이탈주민이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문은 이렇다.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복무했다.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온 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통일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여러 기업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여러 대학에서 정치학과 한반도 통일론을 강의하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소개문은 조금 아쉬웠다. 왠지 이 책이 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성공기’일 것 같다는 선입관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뒤 느낀 솔직한 감정은 성공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볼 때 드는 ‘부러움’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달리 말해 이 책은 한 북한이탈주민이 분단과 대결이라는 격랑의 바다에서 조난자로서 살아낸 분투의 기록이자, 그의 생존투쟁을 더욱 더 힘겹게 했던 한국사회의 편견에 대한 기록이다.
 
책 1부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줄기 삼아 한국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이 겪는 어려움들을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필요할 때는 여러 통계를 근거로 실증해준다. 1부 제목 ‘사선을 넘어 다시 사선으로’가 함축하고 있듯, 저자를 포함한 북한이탈주민은 지금도 ‘휴전선 너머 휴전선’ 앞에서 거듭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100곳 가까이 좌절의 기록만 남겼다. 대부분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 나름 좋다고 하는 대학을 졸업했고 각종 자격증 취득이며 어학연수까지 다녀와 이른바 8대 스펙에도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류전형조차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길 없어 어느 날 지원 서류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톺아보았다. 이력서의 군 복무 여부를 묻는 칸에는 굳이 탈북민이라고 기재했고, 자기소개서의 성장 과정과 입사 후 포부에서조차 나는 스스로 북한 출신임을 친절하게 밝히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탈북민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입사 지원을 했다. 그때부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류를 제출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줄줄이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던 것이다.(59쪽)
 
B를 만난 것은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였다. 북한의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한국 방송을 듣고 무작정 두만강을 건넜다. (…) 그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후 괜찮은 회사에도 취업했다. 가정도 이루고 두 아이의 아버지도 되었다. (…) 그의 좌절은 다른 곳으로부터 연유했다. 그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로, 자신의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해왔던 것이다. 탈북민의 아이와 자신들의 아이는 함께 공부할 수 없다는 항의였다.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조용히 짐을 싼 후 한국을 떠났다.(87쪽)

물론 우리 곁에는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돕는 고마운 남한 사람들도 많다. 저자가 치악산 등산길에서 만난 사람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 사람은 저자의 출신과 사정을 듣고서는 저자가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줬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북한이탈주민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아직도 대다수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사람들의 은밀한 경계심을 느끼며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로 살아가고 있다.
 
책의 2부는 분단과 대결이 만들어 낸 ‘한반도의 조난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서북청년단,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 한국전쟁 포로들, 만경봉호에 오른 북송 재일동포들, 판문점으로 탈출한 지 2년 3개월 만에 위장 귀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이수근, 북녘에 두고 온 가족과의 만남을 지금도 염원하는 재독 학자 출신 오길남, 비운의 망명객 황장엽, 그리고 제3국행 또는 재입북을 감행 중인 북한이탈주민들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난자들의 행렬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일단은 눈에 훤히 보이는 원인부터 제거하면 된다. 아래 저자의 주장처럼 통일은 역사의 조난자 없는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깨닫는다.
 
나는 흔히 말하는 북한 출신의 탈북민이다. 남북한 간의 대립과 대치는 이곳에서도 ‘조난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시사한다. 한반도는 분단 체제하에서 수많은 조난자들을 양산해냈다. 조난자들은 여전히 왜곡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잠재적인 조난자의 운명을 배면에 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탈북민 한 사람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분단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러 구성원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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