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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쉽게 읽을 수 있는 북한경제 ‘변화’ 입문서 『햇볕 장마당 법치』
등록일 2018-04-30

 



‘2018 남북정상회담’이 좋은 성과를 내자 국민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망도 커지고 있다. 다가오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도 잘 치러낸다면 65년 만의 ‘종전’도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남북 정상은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이처럼 전쟁이 끝난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 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판문점 선언’에 담긴 구절들을 빌어 밝혀본다. 하나는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과 북에서 따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 어울리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쓰다 보면 이제 태어날 ‘한반도 평화’가 큰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공연장이나 관광지 같은 곳에서 몇 시간 또는 며칠 만나는 거야 문제없다. 이와 달리 공동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면 상대방이 어떻게 물건을 만들고 나눠 쓰고 있는지,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미 개성공단에서 2004년부터 10년 넘게 북녘 사람들과 경제활동을 해봤으니 조금은 안다고 자신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성공단 모습이 북녘 전체 모습도 아니고, 무엇보다 앞으로 해나갈 경제협력은 개성공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한반도 곳곳에서, 심지어 만주, 연해주에서까지 펼쳐질 가능성도 있으니 개성공단 경험에만 안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참조할만한 책이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아쉽게도 서점에 나가보면 남북경협에 관심 가진 이들이 볼만한 책을 찾기 쉽지 않다. 어떤 책들은 생소한 이론, 개념, 용어 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부족해서 읽기 어렵고, 어떤 책들은 최근 북한경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낡은 정보들만 나열되어 있는 탓이다.

이 책 『햇볕 장마당 법치』는 이러한 아쉬움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일단 이 책은 곳곳에서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를 대조해줌으로써 독자가 생소한 북한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장경제에서는, 각 기업들이 자사 경영진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생산을 결정한다. 특정 제품의 수요가 어느 정도일지를 예측한 다음 일정한 양의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 이와 반대로 전통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개별 기업이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 국가의 경제사령탑이 인민들에게 필요한 물자의 종류와 양을 미리 예측해서 생산계획을 짠다. (…) 시장경제 사회인 한국에서는 원청(예컨대 연필공장)과 하청(광업 업체) 사이에 납품가를 둘러싸고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원청의 ‘갑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하청(중간재) 기업은 국가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된다.”(83~85쪽).
 

이처럼 쉽게 쓰려 애썼다는 미덕에 더해, 이 책은 북한경제의 최근 변화상을 독자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곧 “전통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였던 북한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주로 남북교류·협력 종사자 인터뷰, 이들이 제공한 정보 등을 취합해 꼼꼼히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처럼 요약해볼 수 있다. 지금 북한사회에서는 시장화 진전에 따라 비공식적인 개인 소유권이 성장하고 있는데, 결국 북한 당국은 이를 법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처럼 다양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곧 북한사회에서 ‘법치주의’가 실현될수록 북한 주민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의 경제개혁·개방에 따른 법치주의 발전을 소개한다. 또한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과 나선특구에서 시장경제에 필요한 여러 법제도들을 어떻게 ‘예습’했는지 흥미진진하게 알려준다.
 

“외부에서 북한 당국에 법치와 인권,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라고 경제제재나 무력으로 압박하면 그렇게 될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본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북한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곳은 개성공단이었다. 북한이 공유재산인 토지를 개인(기업)에게 사적 수익 추구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식 허용한 최초 사례다. 남북 당국 간의 충돌이 잦긴 했으나 남측(관리위원회)이 고안한 규범들이 사실상의 법률로 통용된 곳 역시 개성공단이었다.(5, 6장 참조) 북측이 자신들의 필요(세금 징수)에 따라 회계제도를 연구하고 심지어 연수생까지 배출하게 만든 것 역시 개성공단이었다. (…) 더욱이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학습한 내용을 다른 지역이나 체제 전반으로 확산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나선특구의 입주 기업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회계’를 적용하기로 관련 법률에 명시했다. 2009년엔 부동산관리법을 제정한다. (…) 개성공단에서 한국 기업에만 허용한 사용권을 전 국토의 전체 공민에게로 확산시키는 조치다.”(39~40쪽).
 

끝으로 저자는 “북한이 제도 개혁을 통해 경제를 어느 정도 정상화할 수 있다면 점차 자신감도 커질 것이며, 이에 따라 외부 세계에 대한 공격성 역시 수그러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251쪽). 북한사회에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경제적으로 나아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한반도 평화’가 막 태어나려는 지금, 남북경협이 남북경제를 함께 성장시키고, ‘한반도 평화’라는 어렵게 낳은 옥동자를 무럭무럭 키우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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