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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규칙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실천이다 『평화의 규칙』
등록일 2018-07-30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의 구조가 낯익게 다가왔다. 통일교육의 핵심 주제와 이 책의 4개 부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현재 각 급 학교와 시민단체 등에서 이루어지는 통일교육의 핵심 주제는 크게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정책’,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 환경’, ‘북한의 최근 동향과 변화 전망’, ‘한반도의 비전과 과제’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책의 1부 ‘세기의 기적, 한반도의 봄’에서는 4·27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 성사 배경, 회담 결과 평가, 향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전망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정책’ 교육의 내용들이기도 하다. 2부 ‘우리는 지정학적 숙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고, 한반도 주변국들(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세계·동아시아 전략과 대한반도 정책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 환경’ 교육 때 빠지지 않는 내용들이다. 마찬가지로 3부 ‘북한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북한을 보는 시각, 북한의 정치·외교·군사·경제 현황 등을 교육하는 ‘북한의 최근 동향과 변화 전망’, 4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은 통일 개념과 방안, 평화정착과 통일을 위한 실천 과제 등을 교육하는 ‘한반도의 비전과 과제’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맹활약중인 문정인 교수, 20대 국회에서 손꼽히는 북한·통일문제 전문가 홍익표 의원, 20년 가까이 북한·통일 전문 언론인으로 한 길을 걸어온 김치관 기자가 대담 형식으로 함께 쓴 ‘통일교육 종합 교재’로 소개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장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문정인은 이러한 새로운 사고를 ‘평화의 규칙’이라고 이름 붙인다.
 

         냉전 시대 국제 관계를 지배한 관점은 『군사학 논고』를 쓴 로마 시대의 정치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금언이었어요. 이 관점에서 평화는 전쟁의 연장선일 뿐으로 언제든 전쟁이 벌어질 것을 대비하는 시기에 불과했습니다. (…) 이렇게 70년 넘게 대치 상태에서 전쟁을 대비해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고 서로가 힘들어요. 게다가 핵무기까지 등장하고 나니 이젠 그냥 재래식 전쟁이 아니라 남북이 공멸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버렸습니다. 베게티우스의 명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전쟁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평화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평화의 규칙이고 한반도가 전세계에 입증하고 있는 역사의 새로운 교훈입니다(27~28쪽)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는 식의 주장, 곧 한국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한 저자들의 문제제기는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한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지정학적 숙명론 대신 한국이 어엿한 ‘중견국’으로서 동북아시아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1개 국가로의 ‘법적·제도적 통일’에 조바심내지 말고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라는 ‘과정으로서의 통일’, ‘사실상의 통일’을 진전시키는 데 우선적으로 주력하자는 것도 새겨들어야 할 의견이다. 특히 홍익표는 북한의 입장과 생각을 고려하기, 곧 ‘역지사지’도 중요한 ‘평화의 규칙’이라면서 향후 활성화될 남북경협 역시 아래처럼 새로운 사고 속에서 진행하자고 주장한다.
 

         다만 하나 걱정스러운 건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사라지고 북한과의 교류를 막는 데 장애가 다 제거된다면, 거꾸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 파트너로서의 독점적 지위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북한은 다양한 협력 파트너가 생기는 거죠.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도 그렇죠. 방금 거론한 골드만삭스 같은 국제 투자은행들도 성장성이 높은 북한 투자를 당연히 고려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과거와 같은 패턴, 즉 노동집약적이거나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을 이주해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식의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면, 도리어 북한이 우리를 효율적인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북한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우리도 경제의 큰 미래를 생각하고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무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65쪽).
 

이 책의 미덕은 저자들이 새로운 사고의 필요성을 강변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 주요 행위자들의 발언, 객관적 수치 등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의 부제를 ‘격정 대담’이라고 붙인 건 조금 아쉽다. 대담자들의 격렬한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지혜가 돋보이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다소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비교적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북한·통일문제에 관심 가진 독자들의 눈높이와 궁금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치관 기자의 적절한 질문, 원활한 진행을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

말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게 ‘지행합일’이다. 세 저자가 강조한 ‘평화의 규칙’은 사실 이전까지 누구도 내놓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과 태도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좋았던 때로 기억하는 그 시절 남과 북은 대결 대신 평화를 준비하면서,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길을 연결하고, 관광지와 공단에서 함께 일했었다. 앎과 행함의 일치야말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실현의 필수 조건이라는 게 우리가 지나온 남북관계 속에서 얻은 교훈이다. 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평화의 규칙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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