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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다시 시작하는 ‘북한바로알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등록일 2018-08-28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른바 ‘북한바로알기’ 바람이 불었었다. 세계적으로 탈냉전이 빠르게 진전되고 독일도 통일하자 한반도에서도 분단 극복 열망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북한사회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것이다. 당시 북한바로알기를 통해 남한 사람들은 북한사회에도 뿔난 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요컨대, 세계사적 탈냉전, 남한사회 민주화 등을 배경 삼아 이루어진 1세대 북한바로알기는 남한 사람들이 한국전쟁, 냉전을 거치며 갖게 된 대북 선입관이나 편견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1세대 북한바로알기는 남북 사람들의 활발한 교류·협력 없이, 극소수 방북자의 증언이나 북한 당국의 공식 발간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알려주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남한사회도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격랑을 헤쳐 나가면서 북한바로알기는 시들해졌고, 오히려 과거처럼 북한사회에 대한 주관적이고 부정적인 선입관·편견이 커져 가기도 했다.
 
상황이 바뀐 건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이후다. 남북 사람들의 교류·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수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남한 사람들의 북한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구체적 이해가 조금씩 진전되어 갔다. 2000년대 들어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자신이 직접 겪은 경제난, 경제난 이후 북한사회 실상 등을 증언해 준 것도 남한 사람들의 북한사회 이해에 도움이 됐다.
 
이러한 2세대 북한바로알기를 통해 남한 사람들은 비록 과거에는 어땠는지 정확히 모르더라도, 적어도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람들 삶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 변화가 ‘시장화’, 곧 시장경제 요소가 북한사회 곳곳에 퍼져 나가면서 촉진되고 있다는 정도까지는 알게 됐다. 만약 200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 넘게 남북관계가 거의 단절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남한 사람들의 북한사회 이해는 한층 더 깊어졌을 것이다. 이 기간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시장화 진전 속에서 어떻게 오랜 삶의 방식을 바꿔가고 있는지를 북한이탈주민 증언 또는 몇몇 외국인·외국 언론의 글과 사진을 통해 대략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 사람들의 교류·협력이 다시 활성화된 올해부터 3세대 북한바로알기가 시작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지난 봄·여름 방북해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온 남한 사람들의 글과 후일담이 넘쳐나고 있다. 10여 년 전 만났던 북한 안내원, 관계자와 재회해 쌓인 회포를 풀었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 책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다시 북한바로알기를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아래 이유들 때문에 일독할 만하다.
 
첫째, 저자 진천규 기자는 시장화 진전 이전과 이후 북한사회 변화를 잘 소개해 줄 적임자 중 한 명이다. 진 기자는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두 차례 방북한 경험이 있다. 비록 저자가 2000년 초·중반 시장화가 진전되던 북한사회를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2017년 10월~2018년 6월 사이 4차례나 방북 취재를 한 덕분에 시장화 진전 이전과 이후 북한사회 비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저자는 2000년대 초반 남한 사람들에게 조금은 생경하면서도 익숙해졌던 평양 도로의 ‘여성 교통경찰관’도 이제는 옛 모습이 됐음을 알려준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북녘의 교통 상황에 대해 말할 때 전형적인 몇 가지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서 텅 비어 있는 도로와 제복을 입은 여성 교통경찰관이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깃발을 들고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하는 모습이다. (…)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평양 시내에는 출퇴근 시간에 꽤 많은 차량이 이동하고 있었다. 또 제복을 입은 여성 교통경찰관이 있기는 하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대신 한쪽 모퉁이에서 교통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교통안전’이라는 문구를 단 교통지도 차량이 곳곳에 서 있었고, 교통 위반을 단속하는 요원도 보였다. 그만큼 교통량이 늘어났다는 증거일 것이다.”(141쪽)
 
둘째, 이 책 곳곳에는 시장화 진전에 따라 변화된 북한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평양 옥류관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들은 서로의 ‘벌이’가 어떤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고, 광복지구상업중심(구 광복백화점) 판매원은 신제품을 소개하며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애를 쓴다. 또한 ‘평양 비단 상점’, ‘대동문 미용원’처럼 물품이나 용도만 적은 간판 일색이던 평양에도 이제 상품을 홍보하는 대형 입간판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셋째, 북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여가를 보여주는 사진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시민, 모란봉 공원의 관광용 나귀 마차, 출퇴근길 만원 버스, 거리에서 책을 읽으며 등하교하는 학생들, 퇴근길 맥주집에서 선 채로 대동강 맥주를 마시는 시민들, 삶은 계란이 토핑으로 올라간 피자, 한상 가득 차려진 피로연 음식들(잔치음식은 100명 기준으로 보통 300달러 정도고 주류와 음료수는 별도다), 바코드를 찍고 있는 마트 종업원, 려명거리 고층아파트의 실내 모습, 포켓볼을 즐기는 젊은이들, 러닝머신으로 운동하는 시민 등이 책을 읽는 동안 눈길을 잡아끈 사진들이다.
 
진천규 기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지난 1년 여 동안 평양 뿐 아니라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지를 취재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내심 평양 이외 지역 이야기도 담겨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중국 단둥에서 평양에 들어서기까지 차창으로 본 들녘 풍경을 빼고는 평양 이외 지역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다. 서울이 남한사회의 축소판이 아니듯이, 평양이 북한사회의 축소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저자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산 해운대처럼 개발 중이라는 원산갈마지구 취재기를 전해준다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사회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후속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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