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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2020년’에 진짜로 판이 바뀔까?『담대한 여정』
등록일 2018-09-21




 
     “나는 앞선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합니다.”(문재인 대통령, 2017년 7월 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문재인 대통령,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해 7월 베를린에서 ‘담대한 여정’의 시작을 알린 지 1년 2개월이 흘렀다. 문 대통령은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여정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동참시켰다. 외롭게 출발한 여정에서 귀한 동반자들을 꽤나 빨리 만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1월까지만 해도 ‘핵단추’ 운운하며 격렬하게 말싸움을 했었다. 그랬던 그들이 불과 몇 달 만에 왜, 어떻게 이 여정에 동참하게 됐을까? 심지어 최근에는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하지 않는다느니, 공개적으로 고맙다느니 하면서 끈끈한 우정까지 과시하고 있을까? 이 책 『담대한 여정』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황방열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내놓은 분석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먼저 국익 차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떠오르는 중국을 지금보다 더 잘 견제할 수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인민경제 건설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더불어 정 장관은 트럼프-김정은이 관계개선을 통해 얻을 개인적 차원의 이익까지도 언급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치를 더욱 안정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한 시점이 바로 ‘2020년’이다.
  
     김정은은 제7차 당대회에서 ‘국방건설과 경제건설, 인민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수단들을 자체로 생산 보장해야 한다’고 하고, ‘자립적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하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년)을 발표한 겁니다. 특히 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김정은으로서는 경제 분야에서 2016년부터 5년 이내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입니다.(59쪽)
 
     2020년이란 시점은 트럼프에게도 김정은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북한이 2016년 5월에 시작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만료 시점이 2020년입니다. 김정은은 국내 경제적 이유 때문에 2020년까지는 북미 수교라든지 미국 투자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한편, 트럼프에게는 2020년이 1차 임기 마지막 시점이기 때문에 재선 도전을 위해서도 비핵화에 상당한 수준의 진전이 있어야 합니다. 양측이 그 시점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181쪽).
  
이 책은 2018년 8월 30일에 발행됐는데, 발간 직후인 9월 6일 평양을 찾은 정의용 특사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때마침 비핵화 시한을 처음으로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에 북·미 70년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역시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9월 19일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로 비핵화 시한을 분명히 했다.

또한 정세현 전 장관은 종전선언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서 평화협정이라는 ‘출구’로 나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 구축, 비핵화가 함께 추구되는 삼궤병행(三軌竝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주장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추구, 곧 쌍궤병행(雙軌竝行)에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 중 가장 첫 머리에 놓인 양국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추가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목표의 현실화가 바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는 길이라면서 역시 ‘2020년’이면 큰 윤곽이 나올 것이라 전망한다(281쪽). 여러모로 이 책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2020년이라는 시점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한편 이 책에는 정세현 전 장관이 30년 넘게 남북관계 현장을 뛰며 경험한 일화도 많이 담겨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북한경제를 이끌고 있는 박봉주 총리의 과거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박봉주, 박남기 등 경제시찰단이 남쪽에 온 게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10월입니다. 당시 내가 장관이던 때인데, 박남기 당시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단장이었고, 박봉주 화학공업상,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18명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삼성, 현대중공업 등을 보름 가까이 돌아다녔는데, 박봉주가 갑자기 재래시장을 보여달라고 합디다. (…) 그래서 동대문 쇼핑몰에 데려다줬는데, 그때 박봉주가 가게마다 가서 묻고 수첩에 적고 엄청 열심이었습니다.(87~88쪽).
 
잘 알려진 대로 박봉주는 2003년 내각 총리로 임명돼 개혁·개방을 추진하다가 보수파의 반발로 몇 년 뒤 실각했던 인물이다.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던 박봉주를 2013년에 내각 총리로 다시 임명하고 이후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중용한 이가 바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비핵화가 진전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어나갈수록 북한경제사령탑 박봉주의 활약에 많은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정세현 전 장관이 “평화라는 게 간단하게 보면 경제협력 위에 올라서는 상부상조 구조”(95쪽)라고 말했듯이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 북한경제의 개혁·개방 역시 문재인-트럼프-김정은이 함께 걷는 ‘담대한 여정’의 성패에 영향을 끼칠 중요 변수다. 앞으로도 폭포처럼 쏟아질 한반도 관련 뉴스를 제대로 해석하고, 평화·번영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픈 이들에게 ‘담대한 여정’의 친절한 해설서격인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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