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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박환 지음, 『박환 교수와 함께 걷다 블라디보스토크』, 아라, 2017.
등록일 2019-06-27



 
 
“가는 곳마다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 나요.” 며칠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출장을 다녀온 직장 동료가 해 준 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홈쇼핑 여행 상품을 봐도 요즘 블라디보스토크가 뜨긴 떴나보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필수 코스가 뭔가 찾아보니 ‘아르바트 거리’, ‘해양공원’ 등이 추천되던데, 그 거리를 걷는 이들, 그 공원을 찾는 이들은 이 사실들도 알고 있을까? 그 곳 일대가 150여 년 전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이 새롭게 일궈가던 삶의 터전 ‘개척리’였다는 사실, 100여 년 전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가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을 붙들기 위해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활동하던 무대였다는 사실 말이다.

개척리에서 활동하던 우국지사들과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한인들은 1911년 봄 러시아 당국에 의해 쫓겨나 그곳으로부터 서북쪽 언덕배기에 다시 자리 잡고 이 지역을 ‘신한촌’으로 불렀다. 오늘날 신한촌에는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가 1999년에 세운 항일운동 기념탑이 그 시절을 기억하는 유일한 상징물로 남아 있다. 그나마 이 기념탑은 패키지 코스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모양인데, 아르바트 거리와 수직으로 교차하는 포그라니치나야 거리가 과거 개척리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북·중 접경지역 답사를 가는 이들에게 꼭 소개하는 책 『경계를 여행하다』의 작가 안성교는 “역사 여행은 저마다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던 역사적 사실을 장치로 하여 유추해낸 자기 안의 이야기와 동행하는 과정”이라면서 “지난 시간과 내가 소통되려면 역사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지식은 필수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또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자리 잡은 연해주 여행이 보드카를 포함해 이국적인 러시아 음식을 맛본 기억만으로 채워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최소한의 역사 지식을 목말라 할 테고, 그렇다면 이 책 『박환 교수와 함께 걷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 전에 읽거나 연해주행 가방에 담아 가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연해주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장소나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가 크게 세 도시(지역)로 나뉘어 담겨 있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본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앞에서 말한 개척리, 신한촌의 흔적을 찾아보고, 우스리스크에서는 발해 유적과 함께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최재형과 이상설을 추억하며, 구한말 의병 총본산 크라스키노에서는 단지동맹비를 중심으로 안중근의 숨결을 느껴보자는 게 박환 교수의 제안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크라스키노와 입구 항구인 포시에트를 ‘안중근 의거 루트’의 출발점으로 삼아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라스키노에 머물던 안중근은 포시에트로 와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하얼빈역으로 이동해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크라스키노, 포시에트,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 뤼순으로 이어지는 ‘안중근 의거 루트’는 그 시절 안중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추억할 뿐 아니라, 안중근이 옥중에서 품고 펼치던 ‘동양평화’라는 꿈을 현실화시키겠다는 오늘의 의지를 높여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만주·연해주 답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백두산 천지가 북·중·러 접경 지역 답사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다 보니 만주·연해주 답사는 천지를 보기 좋은 7~8월에 많이 이루어지는 편이다. 내게 매해 여름 만주·연해주 답사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유’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2018년 여름 처음으로 가 본 봉오동 전적지에서 열악한 무기로 일제 군대에 맞서던 홍범도와 독립군의 모습을 상상했던 기억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이게 역사를 책으로 배우는 것과 발로 배우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다가오는 8월에는 전국에서 평화·통일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교사들과 함께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가다 중·러 국경을 넘어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를 돌아볼 계획이다. 박환 교수가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 넘게 연해주를 답사하며 얻은 지식과 정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각 등을 압축적으로 담은 이 책은 이번에도 당연히 내 여행 가방에 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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