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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토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에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제목 법타스님_우리 종교계가 통일, 평화지향적인 입장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해야
등록일 2016-04-28
 
 
 
 
정병조: 지난 달에 조계종 민족공동체본부장에 임명되셨는데, 축하드립니다. 어깨가 많이 무거우실 것 같은데요.
 
법타스님: 10년 전에 남북관계가 신명나게 돌아갈 때 같으면 제법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너무 남북이 꽉 막혀서 과연 여기에서 어떻게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 많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
 
정병조: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우리 불자들께 설명을 해주십시오.
 
법타스님: 이름 그대로 우리가 남북이 분단돼있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불교 종단의 역할, 그것을 전담하고 있는 것이죠.
2000년 6월 8일에 창립을 했는데 남북간 불교계의 다양한 교류, 협력사업을 해왔습니다. 2007년도에는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 복원도 했고, 그전에는 북한에 있는 59개 사찰의 단청불사도 했습니다. 인도적 지원사업도 교류중단 전에는 꾸준히 했었구요. 지금은 통일의식 확산을 기조로 교육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북 불교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생각이고 앞으로도 이런 행보가 계속될 겁니다.
 
정병조: 남북관계가 꽉 막혀서 걱정이실텐데요. 이 문제가 해결이 돼야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우리 종단 차원에서 이 일을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스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업들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법타스님: 당연하지요. 최근 몇 년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이 만나면서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보였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금년초에 갑자기 진행된 4차 핵실험으로 엄청난 제재가 가해지고 지금은 더욱더 우리 정부에서도 대북관계를 강경일변도로 가고 있지요.
이런때일수록 우리 종교계가 하나의 통일지향적인, 평화지향적인 입장에서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수 있겠지만, 당장 교류는 불가능하니 현재의 상황에서 민추본은 북한을 바로 아는 교육, 현재의 남북상황 등을 제대로 알기 위한 교육을 중심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 민족의 통일이 왜 필요하고 그 내용이 어떻게 돼야하는가 생각할 수 있겠죠.
 
정병조: 여태까지 남북간 평화와 특히 불교교류를 위해서 법타스님은 동분서주하시고 우리 불교계를 대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동안에 북한 자주 다녀오셨죠?
 
법타스님: 평양, 개성, 금강산까지 합치면 글쎄 100번은 넘을 것 같네요.
 
정병조: 네. 참 많이 다녀오셨네요. 다음 질문은 다른 얘기 같습니다. 북한에 국수 공장도 지으셨죠? 국수공장 이야기좀 들려주십시오.
 
법타스님: 첫공장은 98년도에 황해북도 사리원에 지었고, 몇 년뒤에 평양에도 하나 지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운영을 할 때는 한달에 약 60톤씩 밀가루를 보내면 하루에 7,700명이 나눠먹거든요. 그러면 1년에 한 2,400만, 우리 북한 동포들이 하루는 먹고 살더라고요. 보람을 참 많이 느꼈지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5.24조치로 밀가루를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병조: 잠시 뜨거운 얘기 식힐 겸해서 출가 당시 애기 좀 전해주세요.
 
법타스님: 중3때 선배들 따라서 법주사 겨울방학 수련대회에 갔는데. 그때 생각에는 학교를 바로 그만두고 출가 해야겠다 했어요. 제뜻을 아신 은사이신 추담 큰 스님께서 “중도 무식하면 안된다. 고등학교 졸업장 가져오면 중 만들어줄께. 그간에는 방학 때는 열심히 와서 수행도 하고 불교학생회 열심히 해라”고 하셨죠. 고등학교 와서 3년이 그렇게 길었어요. 오늘 졸업했으면 내일 새벽에 법주사로 갔지요.
 
정병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 즈음에서 궁금해집니다. 스님은 어떤 연유로 북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됐습니까.
 
법타스님: 우리 소원은 통일이라고, 대한민국 사람 중에 통일 원치 않는 사람 있나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활동하기는 어려웠죠. 통일지향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설움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뜻이 있어도 행동을 못하고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85년도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 LA에 있는 남가주대학교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그 학교 도서관에 가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 없던 북한 원전이나 노동신문이 있더라구요. 오히려 우리 한국 불교계에 관한 책은 한권뿐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충격이었죠. 또 거기 가서 보니까 기독교계에서는 열심히 원코리아 무브먼트(one korea movement)라고 통일운동하면서 북한과 제3세계 등에서 만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놀람과 동시에 큰일 났구나, 내가 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게 더 급하구나.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금생에 통일운동을 해야겠구나 제가 발원을 했지요.
평양도 가고, 이론적인 공부도 하고 원코리아 무브먼트에 가입도 해서 그들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뜻을 굳혀갔어요. 막상 북한에 가보니까 이론하고도 너무 차이가 있어서 통일운동은 이론과 실상을 함께 해야되겠다 싶어서 기회만 있으면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요.
 
정병조: 남북 문제에 대한 관심, 여러 차례 남북 교류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셨는데 다 의미 있는 일들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스님 나름대로 가장 보람이 큰 일이었다, 이렇게 느끼시는 것 있으면 한두건만 소개해주시죠.
 
법타스님: 국수공장을 만들었고 그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먹고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사리원 시민들을 보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포교하려고 국수를 나눠준게 아니였지만 스스로 불교를 믿기로 했다는 말에 사실 여부를 떠나서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많이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병조: 마무리로 불자들에게 한마디 격려 좀 해주십시오, 스님.
 
법타스님: IMF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렵다고 해요. 그런데 도심에 가보면 벅적거리고 별천지 같아요. 그 얘기는 뭐냐, 그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했으면서도 그 혜택을 못받는 서민들이 많다는 얘기죠. 그런 면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러려면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역지사지하는 그런 우리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병조: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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