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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단비(칼럼)

김준형_비핵화-평화협정 교환은 실현가능한가?

2016-05-30
조회수 1481
핵위기가 시작된 지 4반세기가 흘렀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장강화에 맞서 한미양국은 외교적 해법을 거의 포기한 체 강대강 구도만 고집하고 있다. 연초 북한의 4차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 이후 시행된 유엔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역시 북한을 굴복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협상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다. 8년간 열리지 못하고 있는 6자회담은 재개조건을 둘러싼 참가국들 간의 첨예한 견해차로 재개전망은 밝지 않다. 서울, 워싱턴, 도쿄는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접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교환 가능성이 급부상했다. 이는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조건으로 미국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중국의 제안은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없으며, 결국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밖에는 없다는 증언과 다름없다. 미국은 일단 수용했으며, 얼마 전 미 정보국장 클래퍼가 비공식적으로 서울을 방문해서 한국정부의 양보 가능한 조건을 타진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보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비핵화-평화협정의 매트릭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이었다. 다만 합의 직후 미국 내 보수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생각했으며, BDA 사건은 그 후폭풍이었다. 이후 2.13과 10.3합의 같은 실천노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미 한·미·일 3국은 비핵화를 평화협정의 전제조건화 했다. 이에 북한은 체제 보장을 위한 억지수단인 핵무기를 상쇄할 만큼의 안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핵 포기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1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크게 변했다는 것이다. 핵실험도 없었고, 로켓발사는 실패하던 당시와 지금의 북한은 다르다. 그동안 4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를 성공했고, 2013년 헌법에 핵보유국 표시를 함으로써 법적인 채비를 마쳤으며, 최근 7차당대회에서 총화에서 ‘핵강국’으로, 결정서에서는 ‘동방의 핵대국’임을 선포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북한의 핵보유는 더 이상 어떤 것과도 교환 등가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선핵폐기론은 물론이고 병행론조차도 북한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핵무기는 북한의 이른바 ‘최종병기’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한미양국 정부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경제지원과 체제보장이 북한에게 여전히 교환조건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월2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북한이 4차 핵실험하기 전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논의하기로 제안했으나, 비핵화 문제도 다뤄야 한다는 미국 측 요구를 북한이 거부해 결국 핵실험으로 이어졌다는 보도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김정은정권은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순서의 교환을 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의 비핵화뿐 아니라 미국이 70년 이래로 공들여온 비확산체제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시위했다. 7차당대회에서 세계비핵화를 꺼내든 이유다.
북한의 일방적인 핵시위에 굴복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잘못하고서 어떻게 문제해결을 바랄 수 있겠는가? 오바마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일부 인식하는 동시에 전략적인내가 오히려 북한의 핵무력 증강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최근 유연성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 역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거나 평화협정을 북한의 요구대로 들어줄 생각은 없다. 또한 평화협정과 아시아전략은 공존하기 어려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북한의 핵개발이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을 정당화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에 대한 미국의 유연성을 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중국과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비는 하겠지만 비핵화에 대한 기본전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일관되게 대북제재만 강조하고, 현 시점에서 평화협정논의는 제재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입장만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을 압박해서 붕괴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투자라는 인식이다. 국내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북한은 계속 악마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북한과의 외교적 해결은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두 보수정부의 8년간의 대북강경노선은 무력했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있으며, 충돌위기의 압력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희망을 놓아버릴 때는 아니며, 어려운 상황은 역설적으로 평화에 대한 절박함을 더욱 요구한다. 미국도 북한도 아닌 한국판 평화체제안을 마련하고 주도해야 하는데, 우선 교환 매트릭스를 낮은 단계로 잡아야 한다. 일단 핵무력 증강을 멈추는 것이 시급하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핵실험 유예-한미군사훈련 축소, 핵동결-군사훈련 중지 또는 연기, 핵동결-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 시작 등을 병행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도 2015년 초부터 이런 교환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낮은 단계의 교환과정을 통해 상당기간 신뢰구축을 한 후에 시기와 교환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협의가 가능하고 상호수용이 가능한 한 시점이 오면 그랜드 바겐을 통해 한꺼번에 일괄 타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에만 올인하는 남북관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북한이 당대회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재래식 무기 군축회담도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 북핵문제가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국제관계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 의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매듭처럼 꼬인 한반도의 문제를 핵문제에만 집착해서 그 줄을 당기면 오히려 더욱 조여지고 헝클어질 수 있다는 지난 25년간의 경험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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