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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단비(칼럼)

이정철_오바마 갬블링 vs. 김정은 블러핑

2016-03-26
조회수 1522
오바마 대통령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갬블링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블러핑(좋지 않은 카드를 가지고 이기려 하는 속임수)을 하진 않는다고들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길 수 없는 패를 쥐고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뜻일 게다. 부산한 일방주의 외교로 역풍을 초래한 부시 전 대통령을 보면서,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 외교(inaction)의 효용을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그는 자신의 외교 철학을 오바마 독트린으로 표현하고자 했지만, 사람들은 오바마 독트린의 실체를 잘 알지 못하다. 그의 외교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주요 외교 노선인 고립주의 먼로 독트린, 봉쇄 전략의 상징인 트루먼 독트린, 베트남 철군기 닉슨 독트린 그리고 반테러전의 원리를 담은 부시 독트린 등과 같이 역사적 분기점에 걸 맞는 계기적 외교 철학으로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의 외교 노선이 하나의 기본 원리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혼종성(hybridity)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의 외교 노선에 품평을 다는 사람들은 다자주의, 뒤에서 이끌기(leading from behind), 진보적 실용주의 등의 하이브리드형 명칭들을 따라 붙이곤 한다.
이런 조심스러운 그리고 하이브리드한 외교 노선이야말로 북한에 대한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이기까지 한 대응을 낳고 있는 주 요인이다. 혹자들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북한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수교 카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바마의 진보적 성향(?)이라는 그 이면에 깔린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시민 혁명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봐야 한다. 베네주엘라 경제 위기에 따른 경제 후원국 해체, 카스트로 형제의 퇴임을 앞 둔 리더십 공백, 주민의 경제 욕망과 기대감의 수직 상승...이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쿠바에도 아랍의 봄(Arab Spring)과 같은 쿠바 시민 항쟁(Cuban Fall)이 가능하다는 결산서를 쥐고 있는 것이다. 88년 만에 아바나를 방문해 마이크를 쥐고 인권을 역설한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연설에 힘이 들어가 보이는 이유이다.

반면 그가 북한을 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도 헤밍웨이의 섬으로 알려진 쿠바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북한이 ICBM 혹은 SLBM을 쏘던, 핵실험을 하던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그것은 남의 일일 따름이다. 국내 청중들이 무관심할수록 정권 담당자들의 외교력은 높아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내 청중들의 관심과 압력이 없다는 점은 정권의 자율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행운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의 행보를 더욱 폄훼하는 무시 전략에 한층 깊게 의존한다.

한편 동아시아의 경우 미국 자신은 북한을 무시하면서도 미국을 대신해 북한을 관리하게 하는, 대북관리를 아웃소싱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 북한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격상되는 메카니즘을 수차례 경험한 바 있는 중국은 기꺼이 이같은 역할을 자임해 나서고 있다. 북한 문제에서만큼은 일본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이유는 대북 레버리지를 갖지 못한 국가의 한계일 따름이다. 실용주의 리더십으로 무장한 미국은 실제 영향력을 가진 나라에 자신들의 대북 정책을 아웃소싱하는데 인색함이 없다. 이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냉혹하고 그의 혼종성에 조금의 낭만주의도 없다.

동맹국 한국의 존재 역시 또 다른 요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포용 정책에 대해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철학인 일방주의를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강경 대북정책을 전개해 나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계속해서 유탄을 맞고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동맹 정치, 다자주의 외교 노선을 강조하고 있어서,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 대북 정책과 긴밀히 연대하고 협조를 취하고 있다.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까지 폐쇄하고 사생결단해서 대북 제재에 나서는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협상에 나서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시선을 돌려 북한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2G에 이어 3G가 되겠다는 북한의 엉뚱한 집념(?)과 블러핑은 한반도를 끝없는 긴장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 비해 김정은 시대의 핵정치는 무모할 만큼 공격적이다. 때문에 자칫 어느 순간에 한반도의 화약고가 화염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우려는 망상이기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베이징에서부터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이런 인식은 공통되어 있다. 무시하는 미국과 강경 제재로 치닫는 한국의 동맹은, 끊임없이 긴장을 높여 존재감을 과시하는 북한의 병진 노선과 부딪혀 ‘강대 강’의 대치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강대 강’의 대치를 관리하는 자가 중국이지만, 중국의 관리 능력 역시 도마에 오른 지 오래다. 어떤 우연이 한반도에 화염을 던질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하이브리드 외교론은 장점도 있지만 그것이 한반도에서는 ‘여러 개의 얼굴을 한 미국’으로 나타나는 단점이 되고 있다. 도대체 몇 개의 미국을 상대로 외교를 해야 하냐 라는 중국의 푸념이 들릴 정도로, 미국의 외교는 일관되지 않다. 지정학, 동맹정치, 핵전략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더해 임기 말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 역시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끌어가는 또 다른 얼굴은 미국의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얼굴에 있기도 하다. 문제는 그 얼굴이 역진하고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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